보는 동안 얼마나 가슴이 무너져 내리던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화염과 함께 무너져 내린 남대문에 대한 비통한 마음은, 그것이 국보 1호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라, 아름답게 한국의 선을 보여주던 화려하면서도 어디에도 견줄수 없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의 정수인 우리의 상징물이 스러져 내리기 때문에 더욱 더 슬프고 비통한 마음 뿐입니다.
특히 한 동영상은 눈물을 흘리던 한 사람이 급기야 큰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던데, 저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한듯 하여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초가지붕과 도자기의 선, 한복의 선과 색 등에서 찾습니다. 담백한 희색은 마치 즐거움 보다는 슬픔을 담은 듯하고, 초가 지붕의 선은 신분 창출을 극복하지 못하고 외세의 침입에 늘 시달려온 민중의 한이 서린듯 하다 머 이런 내용인데 하도 오래전에 읽은 내용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하.지.만.
저를 비롯해서 책을 내던진 같은 부류의 학생들이 내지른 반론은 바로
한국의 기와와 절, 그리고
숭 례 문!!!!!
에서 창출되는 다양한 색상의 어우러짐
힘과 절제의 그 아스라한 경계사이에서 보여주는 단청조각의 섬세함
빼곡히 겹쳐쌓은 주단과 색색이 어우러진 작은 부분 부분마다
복잡오묘하면서도 싸이키델릭하면서 동시에
모자를 눌러쓴듯 하면서도 하늘로 곱게 뻗은 강하고 굵은 선을 보여주는
저 위대한 자태의 숭례문을 떠올렸기 때문일 겁니다.
숭례문에서 어떻게 우리가 한이 맺힌 민족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며
숭례문에서 어떻게 우리가 가난과 침입에 시달려 스스로 자폐적 언어로 미적 감성을 이야기 하는 그런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말입니다.
물론 야나기 무네요시는 광화문과 숭례문의 아름다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긴 합니다만! 그것이 조선을 대표하는 미학, 아니 겨례의 미학이라는 것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지금 광화문이 남아있는 이유는 야나기 무네요시 때문이긴 합니다만 서도, 조선의 미학을 이런식으로 일반화 해서는 곤란하죠)
그 사람의 눈에 보여진 백자와 흰 도포와 초가집도 조선의 아름다움이겠지만,
정녕코 한만이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그런 건 아니라는 게 책을 내던진 이들의 말이었습니다.
숭례문을 보십시오.중국애들처럼 어디 비루하고 촌쓰럽게 용한마리가 꽈리를 틀고 올라가는 디자인이 있습니까
로마애들처럼 나체가 근육을 까 뒤집어 하이데포메이션을 해대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답니까
프랑스 애들 처럼 도포자락이 과하게 바람을 받으며 휘날리고 있답니까.
그저. 도성의 문으로써. 화려함과 동시에 그 육중함을 내 디디고 스스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이 아우라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miru.pe.kr
우리의 마음속에서 아우라를 내뿜던 그 숭례문이
저렇게 쓰러지는 모습은 못내 가슴을 치며 서럽게 느껴집니다.
물론, 랜드마크로 따지면 작고 초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 갔다 오신 분들 그 사이즈와 디테일에 우리의 숭례문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 현란함과 구석구석 쫀득쫀득하게 스며든 600년 가치의 정신적 유물은 결코 스스로를 작게 보이지도 않고,
민족적 혼으로서 그 가치와 독창적 형태를 늘 품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동안 숭례문을 사진으로만 보아야 겠지요.
세삼스래 감격이 업 되어서 작년에 저의 학교를 찾았던 외국인 교수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그때 숭례문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첨부하고,
국제적으로 알려진 뉴스매체에서 링크를 보내려고했습니다.
BBC에서 검색해보니 글이 나오더군요.
http://news.bbc.co.uk/2/hi/asia-pacific/7238210.stm
그런데...
사진이 이게 멉니까.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여주어 참혹함을 설명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알겠지만, 아마도 이 기자는 숭례문이 가진 역사적 정신적 가치를 대표할만한 사진 한장 고를 줄 아는 안목은 없는 모양입니다.
안습입니다.
가슴을 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Posted by up4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