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촌철살인의 도올 김용옥 비판 [1]]
앞서 쓴 글에 이어 이 책에서 관심있게 읽은 부분을 발췌해둔다.
도올의 글을 먼저 발췌한다. 이 글은 자연의 파괴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4000년 동안 인간이 건드릴 수 없었던 성역이 40년 동안에 무너졌다면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의 에너지를 문명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 여태까지 인류의 문명사의 어떠한 방식과도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에너지의 전환이 바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을 고갈시키고 파괴시키고 있다는 가공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자연의 에너지란 천지의 에너지이며, 이 천지의 에너지란 곧 생명의 에너지인 것이다. 자연의 에너지의 고갈이나 파기는 곧 생명의 고갈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저 사막에 우뚝 서 있는 스핑크스나 피라밋은 한없이 신비롭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구상의 문명의 소치라고 말한다면 지금도 풀 수 없을 정도의 어떤 문명에너지의 비약적인 형태를 가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나일의 사막 위에 아무리 피라밋이 수백 개가 들어섰다 할지라도 지구 전체의 기상상태를 바괴시킬 만한 환경의 오염이나 생태의 변화를 초래한 바는 없다. 피라밋이나 만리장성은 인간의인위적인 장난의 극치라 말해도, 그것은 지금도 묵묵히 관광객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고요한 자연의 돌더미일 뿐이다. 그러나 63빌딩 하나가 저지르고 있는 하천의 오염은 결코 묵묵한 한강의 석양의 아름다운 반사로 가리워질 수 있는 그러한 것은 아닌것이다.
이 원글에 대해 김상태는 이렇게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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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로버트 헤이즌의 '풀리지 않는 과학의문들'을 인용한 후) 간단히 말해서 '이산화탄소로 인한 지구 온난화'란 유명한 이야기는 전문적인 과학자 입장에서는 아직 결론나지 않은 멀고 먼 과제라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는 관련된 분야라면 어지간한 교양서적 아무데서나 발견할 수 있다. [중략]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그럼에도 이산화탄소와 프레온 가스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쪽일 것이다. [중략] 사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전문가와 관련자들의 더 많은 연구와 논의를 예의주시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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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학기술 문명이 실제로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환경문제의 대안으로서 과학기술 문명을 폐기하자거나 과학기술 문명만이 문제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히다. 이래서는 그 문명을 잘못 사용하는 정치적-도덕적-경제적 주체의 실체를 놓칠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과학기술 문명은 절대적 요소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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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제 3의 침팬지'를 인용한후] 이스터 섬 사람들은 서기 400년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이들이 외부인을 만난것은 네덜란드 탐험가 야콤 로게벤이 섬을 발견했던 1722년 처음이었다. 따라서 금속문명조차 있을까 말까 한 이 섬에 과학기술 문명따위가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섬은 자연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고갈시켰다. 올씨는 과학기술 문명이 4000년 삶을 40년 만에 변화시켰다고 말하지만, 과학기술이 전무했던 이스터 섬은 1000년동의 삶을 불과 100년 이내에 아예 도륙을 내어버렸다. 얼마나 지독하고 급격한 변화였던지 겨우 200년도 안되는 사이에 후손들은 조상들의 역사조차 깡그리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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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천지의 에너지를 함부로 고갈 시키는 것이 과학기술 문명 때문일까? 올씨 말처럼 과학기술없는 지난 4000년은 아무 일 없이 태평하기만 했을까? 혹시 올씨처럼 잘 모르면서 설치는 사람들이 더 큰 문제는 아닐까? 왜냐하면 이스터 섬을 황폐시킨 주범 중 하나가 그 자연을 회복시킨답시고 종교적 주술에 매달렸던 사람들, 그리하여 더 큰 석상을 만들게 하고 그로 인해 더욱 빠른 속도로 삼림을 파괴했던 사람들, 바로 올씨처럼 멋도 모르고 자연을 왈가불가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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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의 불화는 신석기 시대부터 반복된 역사였다. 일정구역의 섭생지를 자못관리하면 그 안에 살던 밴드나 씨족은 그 날로 종말에 이른다. 한때 인류문명 최고 지대의 문명지였던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과학기술 문명과 아무 상관없이 지금은 석유나 쏟아내는 황무지로 변했다. 하지만 유럽은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 문명을 있는대로 배설하고도 아직 남아잇다.
인간과 자연의 불화는 결코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근원적인 인간성의 문제이며, 생태계 안에서 생물이자 동물로서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래적인 모순이다. 단순히 과학기술 문명을 탓해서는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아주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다.
[중략]
올씨는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피라미드를 짓느라 수백, 수천만 톤의 바위산을 없애는데 문제가 없을리 없다. 산허리에 도로만 놓아도 생채계가 왔다 갔다 하는데, 만리장성을 쌓고도 주변 환경이 온전했을 리가 없다. 죽어버린 메소포타미아나 마야 문명과 달리, 그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와 중국이 살아 남은 이유는 순전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중략]
올시는 또 말했다. 63빌딩은 피라미드 같은 돌무더기와 달리 하천을 오염시키는 큰 문제덩이라고.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이다. 내가 어렸을때 집 근처의 한강은 석탄물처럼 검었으며 가까이 가면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겼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달라졌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와 사회가 모든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수질 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63빌딩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가 과학기술의 총화이자 그 과학기술로 자신들의 환경오염을 철저하게 방비하는 존재다. 만일 63빌딩이 불법으로 환경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과학기술 때문이 아니라 빌딩을 관리하는 자신들의 정신과 태도 때문이다. 63빌딩은 짓다가 안 되면 몇 십만 톤 쓰레기로 방치해 두는 피라미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건물이다. 그것은 환경법규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과학기술로 단단히 묶여있는 건물이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문제이지 과학기술을 부정해서는 아예 가망이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환경문제가 어떤 것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올씨는 사태를 완전히 거꾸로 알고 있다.
- 이와 같은 비판으로 나는 먼저 김상태씨가 왜 도올이 나쁜 사람인지 잘 지적해주었다고 생각하고, 관련 분야에 관해 무지로 점철되어있다는 것을 그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부분의 글로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 또한 나는 그의 이 부분의 글이 과학기술을 맹목적으로 호도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논리적 오류가 무엇인지 이야기 하고 싶을때 인용하기 적절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애가 타는 것은 환경오염이라는 문제가 광범위하고 복잡 다단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접근하는 소위 의식인들이 도올과 같이 문제를 매우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점이다.
- 깊게 생각할 힘이 없기 때문에 빨리 답을 내고 싶어하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 과학기술이라는 해답을 들고 모든 일을 단순한 모습으로 성급하게 환원하는 그 조급증이 보이는 현상들을 모두 기만해 버리고 나름대로만의 논리로 포장해 버린다.
- 과학기술만 없애고 그것으로 과거의 불편했던 시대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때가 괜찮았다, 자연과 하나되는 사상이었다라고 외치는 그들. 그들에게는 정작 어떠한 부분이 잘못되고 그것을 고쳐야 하는지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논의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적다.
- 그들은 단순하다. 간단하게 말한다. 과학기술은 위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이기심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부분은 맞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으로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이기심을 버리라는 것은 맞지 않는 논리이다.
- 인간과 자연과 살아온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종을 남기기 위해 투쟁한 역사다. 보다 생존할 가능성을 높이고, 자신이 추구하는 영리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역사였다. 이기심을 버린다는 것은 자연을 배려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 자연과 동일해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동등한 입장에 놓여있지 않다. 인간은 어떻게든 자연속에 속해있으며, 과학기술은 그것을 분리해내기 보다는 인간이 살기 힘든 자연으로 부터 보호하는데 더 많이 활용되었다.
- 자연을 의인화 시키지 말라.
Posted by up4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