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에서 인용합니다. (130p)

과학자들은 융통성을 갖고 생각한다. 예컨대 그들은 모든 것을 임의대로 작은 부분들로 나누면서도 개념, 증거, 유관성, 연결성, 분석 등을 늘 염두에 둔다. 한때 개념 형성의 복잡성 문제에 천착하기도 했던 노벨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에 따르면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뚜렷이 구분짓는 특성은

(1) 창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호하게 정의된 문제 진술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점진적으로 구조화하며,

(2) 상상한 기간 동안을 그 문제들에 천착하고,

(3) 그 문제들과 관련되거나 잠재적으로 관련된 분야들에 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한다는 점이다."

Posted by up4201

2009/04/16 21:57 2009/04/1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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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통섭 =2=

통섭 1

근래 다윈이 근거한 진화론이 한 갖  이론에 불과하다, 혹은 하나의 설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글을 종종 보게 된다. 올해가 다윈의 저서가 나온지 150년이 된 해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진화론 [혹은 창조과학]이 진화론의 기존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많은 주장을 이슈화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혹 진화론과 같은, 많은 검증의 시스템들을 통해 철저히 검증된 이론이 비전문가, 아마추어 혹은 고등학교때 배운 진화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을 학습한 사람들이 비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다시말해, 우리가 양자역학에 대해 비판하지 않지만, 진화론을 아무런 공부 없이 비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통섭이라는 단어도 앞으로 더욱 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난도질 당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통섭은 생리 심리학, 생의학 [이중에서 특히 생리심리학] 이 다른 학문들과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진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과학을 재구성하는 것- 사실 재구성이라기 보다 각각의 학문에서 삐져나오는 공통분모의 질문들을 엮어 이해하는 수준이겠지만- 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김지하씨와, 도올 김용옥씨다.

이사람들이 주장하는 주요 비판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은 과학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으며, 그것 뒤에 넘실거리고 있는 우리도 모르는 그것이 바로 철학인데 [사실 이사람들이 말하는 철학이나 기에 대해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오히려 과학을 그것으로 부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서양의 이원론적 방법으로 어떻게 이 심오한 세상들을 설명할수 있는가. 그런데 그것을 중심으로 통섭이라는 관점을 가지다니.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머 이런 말이다. 그 뒤에 있는 그 넘실거리는게 무엇이냐면, 김지하씨는 생태 …뭐라고 했고, 김용옥씨는 기철학이라고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냥 내가 이해하기에 분명히 그런 주장은 잘못되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 뒤에 무엇이 있건 간에, 세상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이 0도에 얼음이되고, 100도에 끓는 것 처럼 아주 간단하고 널리 통용되는 그런 것. 그게 필요하다. 거기에 왜 물이 0도에 어느냐고 묻는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물이 어는 것이 어떠한 목표가 있어서인가? 아니다.

여기서 통섭의 한구절을 인용한다.  과학의 이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비교적 적은 양의 글로써 정리했다.


이론은 그 다양한 의미 때문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일상적 맥락에서 이론의 의미는 애매함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주장이 “단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는 말을 듣는다. 누구든 이론을 가질 수 있다. [중략] 심지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닭은 잡아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부두교의 사제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일종의 이론이 있다. 이것은 재림의 징표를 목도하기 위해 아이다호의 하늘을 응시하는 천년왕국의 신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과학 이론의 경우는 어떤가?

혹자는 과학도 추측을 포함하기 땜누에 기초가 허약한 어림짐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입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론이든 타당하며 흥미롭다는 생각. 하지만 과학 이론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 이론은 반례들에 직면하면 폐기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왕 틀린 것이라면 빨리 폐기되면 될수록 좋다.

[중략]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언젠가 말했듯이 이론은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

양자전기역학과 자연선택에 근거한 진화론은 중요한 현상들을 다루는 거대 이론들 중에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그 이론들이 다루는 존재들, 예컨대 전자, 광자, 유전자 들은 측정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의 진술들은 혹독한 비판과 수많은 실험 그리고 경쟁 이론의 끈질긴 문제 제기등을 통해 철저히 시험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최고의 이론은 오컴의 면도날을 통해 판가름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용어는 1320년대에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cam)이 처음 사용한 것인데, 그는 “전제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전제들을 사용하는 것은 헛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론을 판가름하는데 있어서 검약성은 좋은 기준이다. 군살이 없고 시험에 통과한 이론만 있으면 하늘에서 태양의 길을 안내하는 포이보스나 북녘의 숲을 가꾸는 드라이아드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중략]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모아서 그 지식을 시험 가능한 법칙과 원리로 응축하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탐구이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반복 가능성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수행해도 같은 현상이 나와야 하고, 그런 현상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분석과 실험을 통해 입증되거나 반증되어야 한다.

둘째 기준은 경제성이다. 과학자들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적은 노력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정보를 추상화하고자 한다. 이것을 우아함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Elegant)

셋째 기준은 측정이다. 만일 어떤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척도에 따라 적절히 측정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일반화는 명확해진다.

넷째 기준은 발견 기법이다. 최고의 과학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후속 발견들을 자극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은 원래 원칙의 진위를 다시 시험해 보게끔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르는 다섯째 기준은 통헙이다. 즉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서로 연결하고 일치시킬 수 있을 때 가장 경쟁력있는 설명이된다.

그는 설명도 참 엘레간트하게 끝냈다. 마지막에 통섭을 놓았는데 그가 통섭을 놓은 이유를 비추어보았을때, 이것은 단순히 다른 영역의 연구를 맞물리게 한다기 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의 보편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욱더 과학자들에게 덤벼드는 비전문가들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정도이고, 그것도 누군가가 새로운 이론이다 라고 하는 사이비에 의해 그르쳐진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아직 우리 한국에는 말잘하는 과학자가 적다는 것이다. 늘 공부하고 자신이 아는 분야에만 매진하다 보니, 그것을 누구나 알기쉬운말, 문학적으로도 엘러건트한 언어들로 꿰멜수 있는 사람이 참 적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Posted by up4201

2009/01/13 19:52 2009/01/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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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통섭 =1=

통섭의 첫머리를 읽는 도중 요즘의 나의 생각을 잘 대변한 글을 발견했다.


규모를 조금 줄여서 이야기해 보자. 당시에 나는 통합적인 형이상학을 맛보는 것 뿐만아니라 근본주의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멋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목사님의 억센 팔에 머리가 물 속에 한 번 잠겼다 나온, 이른바 거듭난 남침례교인으로 자랐다. 나는 구원의 권능을 믿었다.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은 내 뼛속에 절절 했고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 나는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내게 영생을 줄 것으로 알았다. 여느 10대 청소년들에 비해 경건했던 나는 성경을 두 번씩이나 완독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질풍노도의 청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의심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의 길은 신앙이 2,000여 년 전 지중해 동부 지방의 농경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한 자랑스레 기록되어있는 그당시 사람들의 대량 학살 전쟁과 1940년대 앨라배마의 기독교 문명 사이에서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해야 했다. [묵시록]은 고대인이 환각에 빨져 기록한 마술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인격적인 신은 성경적 우주론에 대한 축자주의적 해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결코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적인 격려 차원에서도 그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통섭에 대해서는 아직도 뜨거운 논의가 한창이다. 번역을 한 최00 교수도 마찬가지지만, 하나의 학문처럼 여겨질 것인지 철학의 한 종류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인지 (이들은 자유-통합 학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아직은 정해지긴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디어가 매우 매력적인 것은, 인류의 지식이 이제 드디어, 수없이 많은 비밀의 문들을 열어제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사람들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섭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그리고 생물학적 접근 방법에 대해 매우 불쾌함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오만함이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기고있다. 적어도 나는 종교가 과학이 될 수 없고, 그 논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과학적 현상에 대한 인간적인 해석일 뿐이다. 인간적 측면의 해석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별을 보고 별자리를 생각하며 제우스신과 그 이야기를 만들어 엮은 것은 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혀 규정하기 힘든 자연의 현상에 대해 우리 인류는 인간적 접근을 해왔다. 그래서 민속신앙이 있었고 무당이 존재했으며 귀신이 있었고, 천지신명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낸다. 인간이 더이상 자연을 인간 사회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일이라고 자각해야 할 때가 왔다. 벌레를 인간의 시각에서 보거나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 자체도 인간의 시각이 아닌 과학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종종 인간의 시각과 과학의 시각을 착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물학이 인간의 특권인것 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특권이다. 외계인이 가질수 도 있으며 우리 이후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우리보다 더 진보한 생명체에게서도 그러한 방법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과학이 만능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학적인 접근은 우리가 예상하고,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지적 도구이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신의 영역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억측이다. 과학이 아직 그러한 것을 설명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것이 신의 영역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객관성을 가진 지식 체계로 관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르고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차가운 이성을 통해 그것을 설명한다. 마음 역시 매우 정교한 도구이고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경험을 통해 형성이 되며, 그것은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본 삶에서 누적된 지식이 체화되고 DNA와 문화 속에 누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통섭이라는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대변하기에 훌륭한 아이디어이면서 동시에 아직 계속 발전해야 할 여지가 많은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더욱 더 진솔하게 탐구하며, 객관적으로 볼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Posted by up4201

2008/09/20 20:28 2008/09/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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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증거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신념이란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내가 그른 것이 밝혀지면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1류가 되고 싶었다. 나는 2류가 아니다. 나는 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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