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 1
근래 다윈이 근거한 진화론이 한 갖 이론에 불과하다, 혹은 하나의 설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글을 종종 보게 된다. 올해가 다윈의 저서가 나온지 150년이 된 해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진화론 [혹은 창조과학]이 진화론의 기존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많은 주장을 이슈화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간혹 진화론과 같은, 많은 검증의 시스템들을 통해 철저히 검증된 이론이 비전문가, 아마추어 혹은 고등학교때 배운 진화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을 학습한 사람들이 비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다시말해, 우리가 양자역학에 대해 비판하지 않지만, 진화론을 아무런 공부 없이 비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통섭이라는 단어도 앞으로 더욱 더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난도질 당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통섭은 생리 심리학, 생의학 [이중에서 특히 생리심리학] 이 다른 학문들과 어울려 하나의 커다란 진리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과학을 재구성하는 것- 사실 재구성이라기 보다 각각의 학문에서 삐져나오는 공통분모의 질문들을 엮어 이해하는 수준이겠지만- 을 대단히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김지하씨와, 도올 김용옥씨다.
이사람들이 주장하는 주요 비판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은 과학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으며, 그것 뒤에 넘실거리고 있는 우리도 모르는 그것이 바로 철학인데 [사실 이사람들이 말하는 철학이나 기에 대해 이해하기는 너무 어렵다. 오히려 과학을 그것으로 부르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서양의 이원론적 방법으로 어떻게 이 심오한 세상들을 설명할수 있는가. 그런데 그것을 중심으로 통섭이라는 관점을 가지다니.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머 이런 말이다. 그 뒤에 있는 그 넘실거리는게 무엇이냐면, 김지하씨는 생태 …뭐라고 했고, 김용옥씨는 기철학이라고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냥 내가 이해하기에 분명히 그런 주장은 잘못되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그 뒤에 무엇이 있건 간에, 세상을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이 0도에 얼음이되고, 100도에 끓는 것 처럼 아주 간단하고 널리 통용되는 그런 것. 그게 필요하다. 거기에 왜 물이 0도에 어느냐고 묻는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물이 어는 것이 어떠한 목표가 있어서인가? 아니다.
여기서 통섭의 한구절을 인용한다. 과학의 이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비교적 적은 양의 글로써 정리했다.
이론은 그 다양한 의미 때문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일상적 맥락에서 이론의 의미는 애매함으로 가득 차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주장이 “단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는 말을 듣는다. 누구든 이론을 가질 수 있다. [중략] 심지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닭은 잡아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부두교의 사제들에게도 그런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일종의 이론이 있다. 이것은 재림의 징표를 목도하기 위해 아이다호의 하늘을 응시하는 천년왕국의 신도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과학 이론의 경우는 어떤가?
혹자는 과학도 추측을 포함하기 땜누에 기초가 허약한 어림짐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입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론이든 타당하며 흥미롭다는 생각. 하지만 과학 이론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 이론은 반례들에 직면하면 폐기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왕 틀린 것이라면 빨리 폐기되면 될수록 좋다.
[중략]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 언젠가 말했듯이 이론은 거듭되는 장례식을 통해 진보한다.
양자전기역학과 자연선택에 근거한 진화론은 중요한 현상들을 다루는 거대 이론들 중에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그 이론들이 다루는 존재들, 예컨대 전자, 광자, 유전자 들은 측정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의 진술들은 혹독한 비판과 수많은 실험 그리고 경쟁 이론의 끈질긴 문제 제기등을 통해 철저히 시험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최고의 이론은 오컴의 면도날을 통해 판가름난다.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용어는 1320년대에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cam)이 처음 사용한 것인데, 그는 “전제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에 필요이상의 전제들을 사용하는 것은 헛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론을 판가름하는데 있어서 검약성은 좋은 기준이다. 군살이 없고 시험에 통과한 이론만 있으면 하늘에서 태양의 길을 안내하는 포이보스나 북녘의 숲을 가꾸는 드라이아드도 더 이상 필요 없다.
[중략]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모아서 그 지식을 시험 가능한 법칙과 원리로 응축하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탐구이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반복 가능성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수행해도 같은 현상이 나와야 하고, 그런 현상에 대한 해석이 새로운 분석과 실험을 통해 입증되거나 반증되어야 한다.
둘째 기준은 경제성이다. 과학자들은 가장 많은 정보를 가장 적은 노력으로 이끌어 내는 과정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정보를 추상화하고자 한다. 이것을 우아함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Elegant)
셋째 기준은 측정이다. 만일 어떤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척도에 따라 적절히 측정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일반화는 명확해진다.
넷째 기준은 발견 기법이다. 최고의 과학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후속 발견들을 자극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은 원래 원칙의 진위를 다시 시험해 보게끔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르는 다섯째 기준은 통헙이다. 즉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서로 연결하고 일치시킬 수 있을 때 가장 경쟁력있는 설명이된다.
그는 설명도 참 엘레간트하게 끝냈다. 마지막에 통섭을 놓았는데 그가 통섭을 놓은 이유를 비추어보았을때, 이것은 단순히 다른 영역의 연구를 맞물리게 한다기 보다, 이를 통해 새로운 지식의 보편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욱더 과학자들에게 덤벼드는 비전문가들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정도이고, 그것도 누군가가 새로운 이론이다 라고 하는 사이비에 의해 그르쳐진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아직 우리 한국에는 말잘하는 과학자가 적다는 것이다. 늘 공부하고 자신이 아는 분야에만 매진하다 보니, 그것을 누구나 알기쉬운말, 문학적으로도 엘러건트한 언어들로 꿰멜수 있는 사람이 참 적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Posted by up4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