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의 구체적인 논의 흐름은 매우 논리 정연하다.
내가 볼때 이 책에 태클을 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특히 종교인들이 성경이나, 경전을 들어 이에 대해 반박하는 그 순간 부터 무한 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도킨스를 비판하려면, 성경과 경전 밖에 있는 사례를 들고 나와야 할테지만, 내 생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누군가 반박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글을 쓴 듯 한 인상을 지울수 없는데, 그것은 아마도 글을 쓴 리차드 도킨스 자신이 그동안 많은 종교인들과 문답을 해왔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게 한다. 번역본임에도 그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격정적으로 써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논리를 감정을 실어서 전달하는 것이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우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어조를 유지한다. 감히 말하건데, 아마 도킨스의 책 중에서 가장 쉽게 읽히고, 가장 이해가 용이하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킨스는 자신의 글을 종교가 가진 해악을 설명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종교의 해악이 우리가 알고 있는 수준 보다 훨씬 위험하고 왜 그러한 것인지를 나열한다. 그 다음, 종교가 과학적 사실,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여러 가설들에 대해 왜곡하는 모습을 언급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종교가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하며,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기독교/무슬림 일변도의 문화로 흡수하려는 측면이 강함을 설파한다.
필자는 도킨스가 사례로 들고 있는 여러 예들이 종교를 억지로 과학에 편입시키려는 종교인들의 노력에 대한 사례들이며 이것들은 다소 역겹게 느꼈다. 그러나 다음 부분에서 그는 나와 같이 종교적 신념과 과학적 신념을 별개로 가진 사람들을 질타한다. 증명 가능한 현실들이 존재하는데, 종교적 해석인 이중적 잣대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 묻는다. 불편할 따름이다.
인간이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에 대한 질문, 우주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추측들을 실으며 그는 종교관이 과학적 사실과 동등하게 취급 받는 다는 것이 넌센스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종교가 있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화적 폐해, 전쟁, 인격모독 등에 대해 소개한다. 과격 이슬람 단체나 과격 기독교 단체나 모두 동일한 잠재된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은 종교가 온화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를 저버린다. 아니 우리는 그 동안 그 사실을 참으로 오랜동안 목도해 왔으면서도, 종교가 전달하는 일부 좋은 메시지에 그것을 미화했음을 알 수 있다.
리차드 도킨스는 종교의 존재를 넘어서 도덕적 가치를 지니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며 이성적 판단을 토대로 둔 사회의 필요성을 간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종교가 가진 폐해를 종교의 자유라는 지켜지지 않고 납득되지도 않는 관대함으로 묻어두기에는 너무 크고, 고통스럽다. 구약에서 발견되는 신의 모습은 한마디로 증오에 가득차고, 자신의 피조물에 질투를 느끼며,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피조물들의 사생활을 감시하여 자기를 믿는지 재물을 잘 바치는지에 대해 일희일비하고있다. 과연 저 광활한 우주와 과학자도 모두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한 천체와 자연의 법칙을 디자인 하고, 엄청난 숫자의 생물을 창조한 신이 하는 일이 고작 피조물들을 심판해서 지옥불에 던저넣는 그러한 일 뿐인가?
아니 그 반대라도 마찬가지다. 칭찬하고 은총을 내려준 이들이 자신이 언급한 유태인들 말고 또 다른 민족이 있던가? (오히려 유태인들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수차례 강조하지 않던가!) 또한 여성을 남성의 노리개로 여기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며, 자신의 말을 한마디라도 어기면 모두 죽여버리거나, 참수하여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넣는 가혹한 신이다. 왜 이런 자비하지 않은 신을 우리가 믿어야 한단 말인가.
신약에 들어서는 분명 나아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약 자체가 신빙성 있는 증거라기 보다 오래된 유럽의 신화들을 짜집기한 누더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4명의 제자들은 같은 사건을 객관성 있게 다루지 못하며, (성경학자들은 그것을 제자들의 관점이라고 소개한다.) 신이 언급하지도 않은 일들을 침소봉대하는 바울로 (바오로) 사도에 의해 교회가 성립되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인가 하는 점이다. 마지막은 환상이라고 언급한, 해석하기도 난해한 요한 계시록을 들며, 결국 구원받을 이는 정해져있는데, 왜 이런 종교를 믿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아이에게 모태신앙을 내려 강제적으로 믿게 하는 것에 대한 폐해도 지적한다. 아이들에게 살인을 가르치면 엄청난 죄인 취급을 하면서, 구약에 있었던 엄청난 살육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여기서도 목적이 분명한 테러와 분명하지 않은 성서속의 무차별 살육을 비교하면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과 반응을 소개한다. 결론은 텔레반이 아이들에게 자살폭탄을 활용하여 테러를 일으키는 것과 신을 위해 무한한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기독교와 다를바가 없다고 거칠게 주장한다.
마지막 부분은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였을때, 세상은 도덕적으로 황폐해지는가에 대한 논의를 한다. 필자가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부분이다. 인간의 도덕은 진화에 의해서 성립이 된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의 경전과는 관계없이 광의적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도덕률을 심리적으로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종교는 오히려 이러한 도덕률을 깨는 규율을 가지고 있음을 들어, 결론적으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에 대한 비생산적 족쇄를 들어낸다. 그는 주로 기독교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기독교에 대해서만 반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잘못 읽은 것이다. 그가 서구권에서 성공회(케냐에서 출생하고 영국에서 자랐으므로 성공회 일 것으로 추측된다.)의 테두리안에서 오랫동안 자랐을 것이므로 1차적인 비판 대상이 될 뿐이다. 그는 사이언톨로지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종교에 대해 거세게 비판한다.
특히 우주에 대해 설명하는 그는, 인간이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살던 패러다임을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복잡한 자연과 현상을 이해하는 사실의 대한 패러다임은 3차원적 공간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개개인마다 인식하는 빨강이라는 색상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빨강이라는 색상과 완벽히 동일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색상을 언어로 부를 것을 약속하면서, 상호간의 교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없앴기 때문에 실제로 그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인간은 잠자리가 인식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인식하듯이, 분자와 원자의 구조, 양자역학과 같이 현대의 물리학 개념을 모두 이해하려면 인간의 세상 인식 방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지적은 매우 신선한 지적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신비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을 뿐이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상식이라는 것이 인간이 미개시대의 패러다임에서 발전하였으므로, 모든 자연 현상을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가 주관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종교의 패러다임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논의 되는 것이 ‘사실’ 자체를 뒤엎는 일이 발생한다. 좋은 사례가 바로 천동설이다.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과학적 검증)이 개발되었고, 이를 통해 인간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이 정말인지 아닌지 제 3자에 의해 철저하게 고증되었고, 고증을 무사히 마친 지식들은 하나의 학술적 체계로써 Rule(법칙-질량 보전의 법칙 등과 같은 것)이 되었다.
그는 또한 과학으로서 달성한 문명이 종교에 의해 거부되거나, 부풀려지는 것을 우려한다. 마치 물이 0도 아래로 떨어지면 얼어붙는 사실을 아무리 감춘다고 해도 사실로 들어나듯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증명되는 것을 ‘사실’로 받아 들이지 않게 되는 상황은 일어나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을 할 수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그 신을 믿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리 증명을 하려 해도 증명할 수 가 없다.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신의 존재는 일단 그들의 경전을 읽고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증명되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넌센스다. 믿을 만한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우선 믿어야 하다니!
그가 우려하는 것은 종교가 과학을 초월하는 아무런 성과나 증명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성과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을 광신도로 만들어 유태인들을 죽이고, 무슬림과 대적하는 인간의 전쟁일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리차드 도킨스의 글들이 모태신앙으로 거의 굳어진 의식에 대해 조금씩 금이 가도록 질러댔다. 그 동안 어렸을때 부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성서와 세상의 부조화, 쉽게 이해가지 않는 여러 가르침에 대해 논리적으로 다시 판단하고 어디에서 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는지 다시 짚어주는 목소리로 느껴진다. 이것은 종교인들에게 비판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진지하게 생각하고 분명한 자신의 의견을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Posted by up4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