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신문은 정치적인 부분은 꽤나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건강섹션 관련해서는 그런 편이 아니다. 한겨레 답지 않게 너무나도 '카더라' 통신을 정리한 내용이 많아 가십정도로 읽고 마는 편이다. 최근에는 기가 어쩌고 하는 글들이 종종 올라와서 어이를 상실한 적도 많았다. 어쨌든 오마이뉴스 만큼이나, 30-40대를 겨냥한 생활 한방 기사가 많은 매체인데,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고질병에 눌린 생활 '건강 가계부'로 새출발]
나도 어렸을때부터 아토피를 앓아 와서 많은 병원에 다녀 보았다. 가장 많이 덕본 것이 식이 요법이다. 단 것을 줄이고, 현미로 식사하며, 식사량을 1/2 정도로 줄였을때 피부가 좋아지고 살이 쫙쫙 빠졌었다. 이런 것도 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십여년 가까이 한의원도 다니고 병원도 다녀 보았지만 우태하 한승경 피부과처럼 진단을 내려준 경우는 없었다.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과연 애초부터 그런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해 관리를 했었어야 하는 걸까?
M.D.하우스를 보다보면 어떤 에피소드였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알러지는 사람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른 종류들이 있다. 거의 사람 수 만큼이나 존재하지. 그래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 사람이 직접 자기 몸을 테스트하고 챙기는 거야.] 아시다시피 아토피는 일종의 알러지 현상이다. 몸에 들어온 자극에 대해 반응이 지나친 현상이다.
아. 그래 이제 퍼즐이 맞춰진다. 아토피에 대해 ~가 좋다더라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였구나.
아토피가 어떻다 ... 라는 떠도는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그런 현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 현상이지만, 원인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 생활 습관을 고쳤더니, 식단을 바꿨더니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질병이다. 병원에서도 여러 연구 끝에 몇가지 공통점을 찾아냈고 발표 되었다.네이버 한국인에서 아토피 및 알러지 전문의를 소개한 여기를 먼저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때 이 기사에 등장하는 PD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한사람의 '병상체험'을 소개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몸에 대해서는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라 라는 메시지가 조금 더 강하다. 내용을 들여다 보면, 이 사람은 아토피가 심해지자, 일지를 쓰고 운동량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과 사건의 충실한 기록은 새로운 도전 즉 실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내가 어떠한 음식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고 어떤 음식은 그렇지 않은지 알아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조미료가 덜 들어간 식단을 찾아다녔단다. -조미료를 안넣기는 힘들겠지만, 조미료에서 자극을 받아 알러지 현상이 일어난다면 [한국은 대체적으로 잘 모르는 피부 알러지는 다 아토피로 총칭하는 편이다.] 그걸 피하는게 맞다. 다만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니 조미료 좀 들어갔다고 해서 난리 칠 것은 아니다.- 이 사례에 나온 사람은 자신이 먹은 것에 점수를 부여하면서, 먹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해 보기 시작했단다. 얼마나 현명한 생각인가!
나는 한방에서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철저하게 기록하고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을 찾아내고 있다. 한방에서 주로 몸 체질이 어떠니 이걸 먹어라 저거 먹지마라 하고 뭉뚱그려 이야기 하는 것은 진료가 아니라 겐또다. -과연 사람의 체질이나, 특성을 검출하는 체계가 있나? 그리고 우리나라 모든 한방병원에서 동일하게 판단하나? 왜 A한의원에서는 QAZ체질이라고 하고 B한의원에서는 WSX체질 이라고 하나?-기가 막혔다면 어디에 기가 막힌 거고, 장이 안좋다면 장의 어느 부분, 어떤 기능이 안좋은 것인가? -이 환자는 병원에 갈때도 병변의 진행을 디카로 찍어가는 기민함을 보여준다. 이런 스마트한 행동은 몸에 이상한 것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꼭 해야 할 일로 생각된다.
얼마전부터 연고 하나를 바르기 시작했다. 몸에 자주 나는 포진들을 짰었는데, 지금은 연고로 해결하고 있다. 유사 성분 약들을 연구해가면서 바르는 편인데, 호전되는게 눈에 보인다. 스트레스 안받고 몸에 잘 맞는 약을 찾는 것 그리고 의사와 상의하는 것. 그것이 상식있는 사람의 행동이다.
음악이 소품화 되면서 음악을 듣는 일이 흔하디 흔하고 이에 대한 이슈들 역시도 흔하지만, 최근 몇몇 기사와 같이 끊이지 않는 표절시비를 보면, 뭔가 한켠에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오리지널리티를 따지고 싶어하는 한국 대중들의 습성이 낳는 음악창작자에 대한 평가절하 풍토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심각하게 생각하여 본 건 아닌데,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는 것이 클래식 반열에 오르는 지름길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가령, 클래식으로 꼽히는 .. (낭만파 같은 그런 고전 음악 말고...) 시간이 지나도 괜찮은 음악들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음악들은 독창성으로도, 또 대중성으로도 인기를 얻기 어렵다. 더군다나 오리지널리티를 따졌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우중충한 창의력의 소산물'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한번도 그런 곡을 못들어 봤다고? 그 이유는 첫째, 멜론 TOP 100만 듣기 때문이거나, 둘째, 좋아하는 음악가의 음반을 사서 모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 하면 그런 곡을 들어보기도 전에 이미 창작자와 기획자에 의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가령, 대중음악의 경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표절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여러 대중 음악들이 우리 귓가에 들어오게 된다.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오리지널리티 보다는 선배들의 창의력에 묻어가는 케이스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얼마전 시끄러웠던 지용군의 노래가 정말 표절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엄밀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새삼 세상 어느 음악도 그틈바구니에서 자유로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다 정확한 해석은 영향은 받았지만, 그정도로 작곡가의 창의력을 폄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 음악에 조예가 얕디 얕은 내가 듣기에도, 지금 내가 늘 흥얼 거리는 f(x)나 2NE1같은 경우도 저 멀리 테크노 음악을 하려던 시도가 없었다면 나올수도 없는 곡들이었다. 은근히 비틀어진 음색과 사운드가 매력이기 때문에 실제로 라이브로 들었을 경우 감흥이 떨어지는 것이 그들의 음악이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1990년대 말에 음반 가판대에 수놓아졌던 수많은 '프로디지' 유사 테크노 그룹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존재할 수 있었을까?
- 참고로 제발 아이돌에게서 아이돌의 것을 바라자. 이들에게서 음악성과 가창력을 바라는 것 따위는 하지 말자. 이미 컴퓨터와 녹음 기술로 만들어진 음악에서 라이브의 실력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거든.
오늘 설겆이를 하다가 즐겨듣는 '아이 부모 멘토' - EBS 라디오 방송에서 이승환의 '좋은날 2'가 나왔다. 이승환씨야 한국에서 손꼽히는 싱어송 라이터긴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행동이 기인이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음악은 좋기 때문에 흥얼거리는 편인데, 좋은날 2의 케이스가 선대의 유물을 토대로 새로운 곡을 뽑아낸 좋은 사례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과거 1960-70년대의 영국 그룹들, 퀸과 비틀즈가 없었다면 과연 이승환의 이 통통 튀는 곡이 나왔을까? 명쾌한 멜로디와 아무 생각 없이 쓴 듯 한 가사가 서로 맞물리면서 빚어내는 감동이야 이승환의 전매 특허지만, 과연 그 영감이 이들 대 그룹의 창작물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부인할 수 있겠나? 중간 중간 전기 기타 선율과 나긋한 피아노 선율을 연상시키는 부분에서 나는 분명코 퀸과 비틀즈의 향취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따라했다 혹은 표절했다고 말하기에는 승환스러운 유치함이 너무 많았다.
그래. 그래서 클래식이 있고, 그런게 여전히 인기있고 그런거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또 듣더라도 유치하지 않은 , 촌스럽지 않은 그 노래들은 영원토록 유사품을 만들어 내도록 반향을 이끌어 내는 거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뭐라 욕할 수 없다. 그래도 좋기 때문이다. 표절이라고 설레발 칠 것도 없다. 영향을 받은 것을 두고 표절이라고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히기에는 그들의 색상이 너무 많이 묻어 있다.
1980년대에 그렇고 그런 비슷 비슷한 노래들이 많다. 다양화된 형식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거니와 연주나 공연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수가 노래를 불러도 그것을 소화할 음반시장 자체가 적었다. 그러다보니 따라부르기 쉽고 , 냅다 클라이막스에 질러도 노래가 되는 노래들이 많았다. (그때는 손벽을 치면서 모두 함께 돌려가며 부를 수 있어야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그 와중에도 약간의 '왜색'이 섞여있다고는 하지만 창의적인 '산울림'의 노래들이 참 돋보인다. '조용필'은 어땠나. 물론 지금도 건드릴 수 없는 레전드가 된 그의 음악 한편에는 누군가 혹은 어떠한 음악 형식에서 영향은 받았되 스스로의 창의력으로 재생산한 곡들이 즐비하게 쌓여있다. 요절한 '유재하'나 '김광석'이 언더그라운드의 명맥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이 온전히 그들만의 것이었나? '산타나'는 시작부터 그들의 음악이었나? 아니다. 모두다 어떠한 영향을 주고 받았다.
표절. 사실 1990년대 음악들. 특히나 인기 있었던 대중 가요들 일본 가요 영향 안받은게 얼마나 있었나. 심지어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같은 경우는 대놓고 인트로 부분을 따다 집어 넣은 인기곡도 있었고, 스맙이나 안전지대 틱한 음악들 꼽으라면 한트럭도 넘는다. 시간이 지나서 곱씹어 보건데 그중에서 지금도 클래식이라고 즐겨 부를 수 있는, 기억이 나는 노래가 얼마나 되나? 아마 창조 작업의 원작자가 지향해야 할 것은 남의 곡을 따라 한다, 비슷하다 수준이 아니라 영향은 받았으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이 있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들이 이뤄야 할 수준은 클래식으로 남길 곡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겠다.
그렇다고 이 글이 결코 음반 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명확한 표절 상황에 대해 '우리 오빠는 안그래여'라는 식의 의견이 아니다. 음악이 어떤 개인 혹은 집단의 노력에 의해 창작되고 그 소유가 분명해지는 만큼, 분명한 유사함을 활용하여 창작 시간과 비용을 줄이려는 악의적인 것이라면 법으로 응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본 글의 취지는 표절의 선이라는 것이 어느정도로 봐야 하는가라는 점에서 공통된 유사성을 분명하게 발견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특성이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표절로 밀어붙이는 식의 판단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아.. 또 밥값을 버느냐 예술하냐 이런 이야기로 끝나 간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 뿐이다.
아직 원숙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그리고 아직 음악가 로 볼수도 없는 이들에게 작은 건수라도 시비 걸어보는 작태보다는 영향을 인정하고 나름의 창의성에 고개를 끄덕여 줄 줄도 알아야 한다. 마음에 안들면 안사면 된다. 그럼 자연스레 사라진다. 1990년대 엄청난 표절곡들이 많았음에도 '룰라'말고는 별 난리 안난 이유는 그 곡들이 모두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음악하시는 분들. 고생많으시지만 지금 악상 떠오른거, 적어도 남의 노래와 비슷한가 아닌가, 혹은 '정말 내가 클래식의 반열로 올릴 수 있나' 한번더 생각해 보시기 바라고.
아. 뭣보다도 음악시장의 상품 사이클이 짧은 것을 악용해 약간 재탕하는 거라면 - 음악가로써 앞으로도 그 길을 계속 할 것인지 자질 반성부터 하시고 작곡하시라.
마치 묵직한 고목을 잘라 만든 뭉툭한 악기에서 나올 법한 그 깊은 저음과 울림. 그리고 결코 밝을 것이 없는 기타 선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오래간만에 아내가 묵혀둔 테입을 틀어보니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나온다.
대중적으로 말하자면 양희은이 부른 것이 훨씬 인기가 있었지만, 원래 나의 마음속의 아침이슬은 원작자인 그가 부르는 것이다. 끓은 곰국같은 목소리로 아쟁처럼 떨어가면서 부른 그 노래는 나의 중학시절과 대학시절을 잇는 스크롤바와 같다.
대학생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동경을 가지고 있을때, 중학교 음악 선생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물론 말로 알려준 것이 아니라 김민기의 음악으로 그것을 알려주었다. 참 전교조틱한 분이셨는데, 그녀가 들려준 노래는 음악시간에 아주 아주 생뚱 맞을 법한 [사계]와 [연못] 이었다. 16절지 갱지에 철필로 눌러써 인쇄하여 나누어준 악보의 노래는 우리의 음악책에서 마주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음악책에 나오던 노래들이 가곡위주로 꿈나라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면, 그녀가 나눠준 갱지 안에는 나도 겪어 보지 못한 민초들의 어눌한 삶이었다.
어린 마음에 특히나 충격이었던 두 노래는 나중에 거북이가 리메이크했을때 다시 리마인드 되었는데, 그들이 밝게 부른 것에 대해 다소 못마땅했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사계의 가사를 4절까지 들어보면, 눈물이 울컥 거리면서 목이 메는 노동 환경에 대한 비릿한 고발들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암울한 가사를 전달하는 희망적인 멜로디는 나로 하여금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연못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산 오솔길 옆~ 하면서 동요처럼 시작하는 이 노래는 중반부를 지나면 갑자기 어두워지며 무척 무서운 씬이 묘사된다. 대학생들의 노래란 바로 이런 것일까 경악한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1995년은, 참으로 특이한 시대였다. 지금 486으로 넘어간 전투적 선배들과는 거리가 있고, 이들의 유산을 어물쩍 이어받은 4-5살 윗 선배들이 아무렇지 않게 예비군복에 막걸리를 들이키며 두꺼비 진로 소주를 강권하고 있었고, 선배들이 마땅찮은 우리들은 이상한 전통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정말 전투적이고 암울했고, 최루냄새 가득했던 날들은 끝나가고, 평화가 도래하면서 어깨에 힘잡는 선배보다는 밥과 커피를 잘 사주는 선배들을 더 멋있게 보아주던 시대로 넘어갔다. 나는, 말하자면 X세대 였으며, 신세대라고 주장하였으나 본디 배운 선배들과 다니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면 (내 학교는 조치원이었다.) 홍대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이거나, 대학로 뒷 피막골이 호강의 전부로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내 피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분명 내 후배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후배들은 만화를 더 많이 보던 세대였고, 나는 뉴스만 틀면 데모하던 광경과, 3김들이 싸우는 내용들이 더 많이 나타난 광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처럼 보다 즐거운 청소년기를 못보낸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문화적으로 어느쪽으든 이동할 수 있는 시대적 특권을 타고 난 것이 바로 지금의 30대 초중반이다.
테잎을 뒤집어 넣으면서 나는, 아침이슬과 상록수에 얽힌 추억의 비주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영원히 제도권 위로 나올 것 같지 않던 언더그라운드의 김민기는 이제 뮤지컬계의 스타다. 뿐만아니라, 박세리 덕분에 운동권 노래라고 치부했던 상록수를 군대에서도 매일 들을 수 가 있었다. 심지어 장사익씨의 노래는 노무현 정부때 더 인기를 잃은 듯 한 느낌이다. 은밀히 숨어서 듣는 매력이 없기 때문일까? (절대 그럴 필요 없는 노래인데도 , 그가 가진 운동권 스러운 분위기 때문일듯 하다.)
나는 홍상수영화가 좋다. 박찬옥감독 영화 '질투는 나의 힘'도 좋다. 홍상수와 박찬옥 감독 영화는 매콤하고 답답한 삶의 현실과 혼돈 속에서 각 정치적 계급이 다른 개개인들이 벌거벗고 부딧히는 모습들이 주요 내용들로 나온다. '오 수정'에서 까실한 뒷골목에서 어설프레 수정을 안으며 개걸스레 작업질을 해대는 모습도, 어줍잖게 검은 봉다리에 먹을걸 싸가면서 후배를 배웅하는 모습도, 그리고 피막골에서 고갈비를 젓가락으로 헤비며 막걸리는 먹는 그 모습도 다 나도 겪고 내 동료들도 한번쯤은 겪어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투는 나의 힘에 나오는 캡틴큐. 옷은 멀멀하게 입었지만, 그래도 귀에 듣는 것은 메탈을 들어야 하는 젊은이. 사실 어디에도 김민기의 노래는 나오지 않지만, 그의 노래가 어느 한부분에라도 차지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김민기의 노래는 생명력이 길어서, 시대가 변화한다 해도, 고독하고 절망스러운 실수와 패배 그리고 암울한 경재력에 자신을 경멸하는 분노를 사회적으로 내뿜으려 했던 어떠한 세대와도 질기게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그래 그것이 90년대다. 고소영의 '언니가 간다'에서 바랬던 그 90년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앞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영화, 음악, 미술과 오래된 신문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추억들이 되었다. 김민기의 노래는 세대별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낼까. 방송에서는 서태지가 나오는 동안,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때 듣게되었던 김민기의 노래들. 지금의 후배들은 이 감수성을 알까.
무엇보다도 먼저 밝히는 슬픔.
정치분야는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와 피부로 와 닿는 것이 정말 멀게 느껴질 뿐만아니라, 형이상학적 가치에 매달려서 상식을 넘나드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 염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이상한 신념으로 무장하게 만들고, 그 너머에 유토피아가 있을 것이라고 세뇌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현실을 시궁창입니다. 인간의 역사들을 돌아보면 이제 정말 멋지게 살만큼 좋아진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동안 시궁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래도 그래도 이 시궁창에 상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묵은 잘못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희생과 피로 인해 이 사회는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왔습니다. 개인의 노력도 , 단체의 노력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방점을 또 찍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책임감 없이 회피하는 일말의 도피처럼 보일수 있겠습니다만, 그가 살아온 역사들 속에서 일관성을 찾아보면,
그의 죽음이 단순히 자신의 도덕성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있는 잘못된 권력의 피해를 막으려는 마지막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말도 안되는 수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 그로 인해 주변인들이 피해입을 것이 두려워 고심끝에 선택한 카드를 보고 우리는 결국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의 모습에서 경허함을 느낍니다.
사회 한쪽에서는 그의 죽음이 의미 없음이요, 정치적 궁지에 몰린 개인의 죽음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회적 맥락으로 들여다보면,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의 남용과 오용에 대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그가 늘 외치던 말. 이 국가는 한번도 600년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하여 옳은 것을 외치는 사람에게 빛을 내려주지 못했다는 그말. 그 말이 마지막으로 그의 죽음으로 또 증명된 것 같습니다.
기적같았던 그의 당선이후, 대한민국 얼마나 달라졌나요. 지금 돌이켜 옛날 신문들을 보면, 그가 이룩한 변화들이 더욱더 커보이고, 극명해 보입니다.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늘 인간으로써 삶에 대해 책임지고, 누구보다도 약자의 손을 들어주려 한 그의 모습이 이제는 살아있는 전설이 아닌, 죽어버린 신화로 끝난 것에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가 심은 씨앗들이 있습니다. 5년간 자신의 정치세력을 스스로 약화하고, 권력이 중심으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선진국형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기득권과 싸웠던 모습. 그리고 궁지에 몰리면, 늘 승부사적 기질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킨 모습. 옳은 것을 옳다 하고, 욕을 먹는한이 있어도 국민들과 대화하려한 그 모습은,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 특히 , 어떤 분야에 일가를 이루었거나, 자수 성가의 노력을 해낸 사람들을 관찰해 볼 기회가 있다면, 그들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표면적으로 특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관찰하면 공통된 사실이 한가지 보여지는데 그것은 바로 어느 순간이건 최선을 다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좀더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분명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당신이 가진 경제적 한도 내에서 무엇인가 근사한 장식품을 사야 한다고 가정합니다. 장식품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돈과, 유사한 장식품을 샀을때의 가치 등등을 따지고 그것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도 알아볼테죠. 아마 이것을 다시 되팔때는 얼마만큼 더 이윤을 얻을지도 계산해 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투자로 더 좋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 그들은 노력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 다는 것입니다. 아까의 예를 바꾸어 장식품 대신에 아이의 병을 고친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위의 노력은 매우 당연한 노력처럼 여겨질 것이고, 어쩌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이를테면, 잘 아는 의사를 찾는다던가, 의사들도 여러명 만나볼 것이고, 지역에서 벗어나 큰 도시로 가는 것도 서슴치 않을 겁니다. 경제적으로 허락이 된다면 더 많은 치료의 기회를 얻으려 할 것입니다.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도 이들의 행동에서는 이와 같은 차이가 관찰 됩니다. 남들과 동일한 노력을 가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노력 투자를 하되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끔 순간순간 힘쓰는 습관을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죠.
한끼를 먹더라도 가장 좋은 기분이 드는 곳에서, 공부를 한다면 1분을 쓰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운동을 하더라도 보다 더 많은 열량을 소모하도록
이들의 행동과 언행은 보다 나은 결과를 항상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점이 '에이 머 이런걸 다 해야 해' 하며 귀찮다고 넘겨버리는 행동이 익숙한 일반 사람들과 차별되는 점입니다.
새삼스레 눈에 익은 그 성공한 지인의 행동이 갑자기 새롭고 신선하게 와 닿는 순간에 내 깨달음도 조금 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노력을 위해 나를 부리는 것은 귀찮은것이 사실입니다. ^-^
다만, 시간과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확고해야만 시간을 너무 많이 들인다던가, 쓸데 없는 노력이 되지 않도록 하게 되겠죠.
꿈꾸는 고행2
어제는 그 학생과 다시 만났다. 카이스트에 오고 싶다고 상담을 했던 그 학생이다.
만나기 전에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가 요즘 겪고 있는 문제 즉 실행에 있어서 무기력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가 독려와 감시를 해주는 팀의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라면 서로 매일 독한 스케줄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을 보다 끈기있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 때문이다.
자기 계발 도서를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 지속적으로 자극을 준 경우나 스스로 자기의 자극을 위해 고군 분투하는 내용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내가 스승이 된다는 것도 자기 앞가림 수준을 벗어나야 건의 할 수 있는 문제 인것 같고, 그렇다고 이렇게 전투적으로 나서는 애를 난 잘 모르겠으니 알아서 해라 라는 식으로 방관만 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서로 솔직하게, 앞으로 해야 할일들을 리스트 업 하고, 각자가 낙오자가 되지 않게 독려하는 팀을 만드는게 어떨까 하는 게 아이디어.
간단한 제안인데, 직접 해보니 만만찮다. 어제는 약 2시간동안 2년후에 정말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고 다시 1년, 3개월, 1개월 이렇게 나눠 보았는데, 욕심은 많고 신경써야 할일들도 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학생은 신난듯 여러가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서로 힘든 일일 것임을 강조했는데, 별로 와닿지 않는 건지,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다소 잘 모르겠다.
사실 카이스트로 온다는게 쉬운일은 아니다. 나야 행운의 행운의 케이스였지만, 이 친구가 카이스트로 온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영어도 문제지만, 제일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는가 하는 성장의 문제.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그 열정을 끝날때까지 유지시키는가이다.
이에 대한 책들은 정말 차고 넘친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서로 힘을 낸다는 것도 어렵지만, 끝까지 신뢰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도 어렵다. 그간 읽었던 여러 서적의 내용들을 종합해서
1. 문제를 분명히 SMART의 기법으로 정의하기 2. 하루 해야 할 분량을 정확히 알아보고 자신의 한게를 파악하기 3. 하루하루 매일 성취한 내용을 적어보기
이렇게 3가지로 해야 할일들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싸이월드를 통해 서로의 매일 이야기를 적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매일 매일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일이고, 힘든일이다. 어떨때는 매일 적지 않은 것을 편치 않게 생각하거나, 죄책감으로 확대시켜 결국 도망가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도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