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묵직한 고목을 잘라 만든 뭉툭한 악기에서 나올 법한 그 깊은 저음과 울림. 그리고 결코 밝을 것이 없는 기타 선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오래간만에 아내가 묵혀둔 테입을 틀어보니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나온다.
대중적으로 말하자면 양희은이 부른 것이 훨씬 인기가 있었지만, 원래 나의 마음속의 아침이슬은 원작자인 그가 부르는 것이다. 끓은 곰국같은 목소리로 아쟁처럼 떨어가면서 부른 그 노래는 나의 중학시절과 대학시절을 잇는 스크롤바와 같다.
대학생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자유로운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동경을 가지고 있을때, 중학교 음악 선생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물론 말로 알려준 것이 아니라 김민기의 음악으로 그것을 알려주었다. 참 전교조틱한 분이셨는데, 그녀가 들려준 노래는 음악시간에 아주 아주 생뚱 맞을 법한 [사계]와 [연못] 이었다. 16절지 갱지에 철필로 눌러써 인쇄하여 나누어준 악보의 노래는 우리의 음악책에서 마주하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음악책에 나오던 노래들이 가곡위주로 꿈나라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면, 그녀가 나눠준 갱지 안에는 나도 겪어 보지 못한 민초들의 어눌한 삶이었다.
어린 마음에 특히나 충격이었던 두 노래는 나중에 거북이가 리메이크했을때 다시 리마인드 되었는데, 그들이 밝게 부른 것에 대해 다소 못마땅했던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사계의 가사를 4절까지 들어보면, 눈물이 울컥 거리면서 목이 메는 노동 환경에 대한 비릿한 고발들로 이뤄져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암울한 가사를 전달하는 희망적인 멜로디는 나로 하여금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까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연못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산 오솔길 옆~ 하면서 동요처럼 시작하는 이 노래는 중반부를 지나면 갑자기 어두워지며 무척 무서운 씬이 묘사된다. 대학생들의 노래란 바로 이런 것일까 경악한 적이 있었다.
내가 대학을 들어간 1995년은, 참으로 특이한 시대였다. 지금 486으로 넘어간 전투적 선배들과는 거리가 있고, 이들의 유산을 어물쩍 이어받은 4-5살 윗 선배들이 아무렇지 않게 예비군복에 막걸리를 들이키며 두꺼비 진로 소주를 강권하고 있었고, 선배들이 마땅찮은 우리들은 이상한 전통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정말 전투적이고 암울했고, 최루냄새 가득했던 날들은 끝나가고, 평화가 도래하면서 어깨에 힘잡는 선배보다는 밥과 커피를 잘 사주는 선배들을 더 멋있게 보아주던 시대로 넘어갔다. 나는, 말하자면 X세대 였으며, 신세대라고 주장하였으나 본디 배운 선배들과 다니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가면 (내 학교는 조치원이었다.) 홍대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이거나, 대학로 뒷 피막골이 호강의 전부로 여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내 피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해 지는 느낌이다. 나는 분명 내 후배들과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다. 후배들은 만화를 더 많이 보던 세대였고, 나는 뉴스만 틀면 데모하던 광경과, 3김들이 싸우는 내용들이 더 많이 나타난 광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 처럼 보다 즐거운 청소년기를 못보낸 것은 아니다. 쉽게 말해 문화적으로 어느쪽으든 이동할 수 있는 시대적 특권을 타고 난 것이 바로 지금의 30대 초중반이다.
테잎을 뒤집어 넣으면서 나는, 아침이슬과 상록수에 얽힌 추억의 비주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영원히 제도권 위로 나올 것 같지 않던 언더그라운드의 김민기는 이제 뮤지컬계의 스타다. 뿐만아니라, 박세리 덕분에 운동권 노래라고 치부했던 상록수를 군대에서도 매일 들을 수 가 있었다. 심지어 장사익씨의 노래는 노무현 정부때 더 인기를 잃은 듯 한 느낌이다. 은밀히 숨어서 듣는 매력이 없기 때문일까? (절대 그럴 필요 없는 노래인데도 , 그가 가진 운동권 스러운 분위기 때문일듯 하다.)
나는 홍상수영화가 좋다. 박찬옥감독 영화 '질투는 나의 힘'도 좋다. 홍상수와 박찬옥 감독 영화는 매콤하고 답답한 삶의 현실과 혼돈 속에서 각 정치적 계급이 다른 개개인들이 벌거벗고 부딧히는 모습들이 주요 내용들로 나온다. '오 수정'에서 까실한 뒷골목에서 어설프레 수정을 안으며 개걸스레 작업질을 해대는 모습도, 어줍잖게 검은 봉다리에 먹을걸 싸가면서 후배를 배웅하는 모습도, 그리고 피막골에서 고갈비를 젓가락으로 헤비며 막걸리는 먹는 그 모습도 다 나도 겪고 내 동료들도 한번쯤은 겪어본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투는 나의 힘에 나오는 캡틴큐. 옷은 멀멀하게 입었지만, 그래도 귀에 듣는 것은 메탈을 들어야 하는 젊은이. 사실 어디에도 김민기의 노래는 나오지 않지만, 그의 노래가 어느 한부분에라도 차지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김민기의 노래는 생명력이 길어서, 시대가 변화한다 해도, 고독하고 절망스러운 실수와 패배 그리고 암울한 경재력에 자신을 경멸하는 분노를 사회적으로 내뿜으려 했던 어떠한 세대와도 질기게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그래 그것이 90년대다. 고소영의 '언니가 간다'에서 바랬던 그 90년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앞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영화, 음악, 미술과 오래된 신문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추억들이 되었다. 김민기의 노래는 세대별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낼까. 방송에서는 서태지가 나오는 동안,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때 듣게되었던 김민기의 노래들. 지금의 후배들은 이 감수성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