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김용옥의 비판이 있지만,
학업에 뜻이 있는 나로써는 그의 학자적 자질을 검토하며 써놓은 구절이 매우 마음에 와 닿았다.

세번째 이유는 올씨가 어린 시절 부터 불혹의 나이에 이르기 까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대화하는 법을 배운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앞의 요인을 발생시킨 근원이기도 하다. 사람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패배하는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명로하지 못하고 주관적이어서 전달에 실패하거나 빈틈이 많이 반론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자신으 옳고 멋지다 믿었지만 실제로는 매우 한심했다는 좌절을 느껴보는 것이 이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은 조심성을 배우고 엄밀한 준비성을 체득한다. 어떻게든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려 애쓸 것이며 생각이나 말을전개할 때 되돌아올 문제나 반론을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게 될 것이다. 학문적 엄밀성과 예리함, 사고의 독창성과 풍부함은 여기에서부터 발생한다. 만일 이런 시행착오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거나 대화할 수 없다. 그것은 권투선수가 스파일과 실전경험 없이 혼자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과 섀도복싱만으로 챔피언이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 없다.

맞는 말이다. 글쓰기는 쉬우나 남에게 비판을 받는 것은 정말 힘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읽는 사람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글을 쓴 사람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이해하고 비판할 수만 있다면 학문적 성숙이 이루어진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문단은 올씨 에 대한 김상태씨의 직격타 연속이다.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혼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의 연타는 계속된다.

도올은 [철학의 사회성] 이라는 글을 인하대학교 강당에서 '준계 철학 연구 발표회'에 참석하여 발표한 후 처참하게 비판을 당한다. 그는 그것을 나중에 도올 논문집이라는 책에서 그 일을 들먹이며, 그때 자리에 있었던 대학교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을 해댔다. 얼마나 비열하고 냄새나는 행동이냐.

격투기 시합은 몸으로 치고받기 때문에 살벌하다. 반대로 학술토론회장은 머리와 논리로 치고받기 때문에 살벌하다. 어느 쪽이 더 살벌할까? 학술토론회 강단에서 연사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살벌함을 잘 모른다. 그래서 발표자는 조심스럽고 치밀해야 한다. 안 그랫다간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다.
올씨는 이 사실을 모른다. 매일 자기 칭찬만 하는 사람들 혹은 전문가 아닌 대중이나 학생들에게 잘난 체만 했으므로 학술토론장의 무서움을 알 수가 없다.

글에 대해서도 김상태는 도올이 함량미달임을 갈파한다.
감강경강해라는 책에서 한부분을 발췌하여 도올의 글을 해부하기 시작한다.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신이라는 주부 속에는 이미 신의 존재성이 포함되어있으므로 그 질문은 근본적으로 성립 될 수 가 없는 것이다. 신이라는 말은 이미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은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알수 있을 것이다.(금강경강해, 도올 김용옥)
 [중략]
가장 좋게 보아주었을때 올씨는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의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을 역설하려 했을 것이다. 혹은 안셀무스나 버트란트러셀의 이론을 염두에 두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신 개념에 관한 독특한 해설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전제 없이 위와 같은 우격다짐을 부리는 건 곤란하다. 설혹 안셀무스나 버트란트 러셀이 온다 해도 기껐해야 그들의 한정된 의견일 뿐이다. 그런데도 올씨는 멀쩡한 대중과 독자에게 이와같은 우격다짐을 부리고 있다. 이 문장을 고등학생이 보았다고 가정해 보라. 그 학생은 몹시 괴로울 것이다. 자기 생각으로는 도무지 말도 안되는 것 같은데 유명한 학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니 오히려 자기가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알것이다'라는 말은 견디기 어려운 야비함이다. '누구든지 상식적으로 알기'는 커녕,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것을 올씨는 이렇게 둘러친다. 이는 자신의 무지를 독자에게 뒤집어씌우는 대단히 못된 술책이다.

할말이 없다.

먼 곳에서 도올을 욕하기 전에 내 스스로에게도 이러한 면은 없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부끄럽고 낯뜨거워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든다.
어설픈 공부로 인해, 더러운 방법으로 학자가 되었다는 말보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Posted by up4201

2008/12/07 07:59 2008/12/0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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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증거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신념이란 잘못된 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내가 그른 것이 밝혀지면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1류가 되고 싶었다. 나는 2류가 아니다. 나는 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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