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첫머리를 읽는 도중 요즘의 나의 생각을 잘 대변한 글을 발견했다.
규모를 조금 줄여서 이야기해 보자. 당시에 나는 통합적인 형이상학을 맛보는 것 뿐만아니라 근본주의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멋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목사님의 억센 팔에 머리가 물 속에 한 번 잠겼다 나온, 이른바 거듭난 남침례교인으로 자랐다. 나는 구원의 권능을 믿었다.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은 내 뼛속에 절절 했고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 나는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내게 영생을 줄 것으로 알았다. 여느 10대 청소년들에 비해 경건했던 나는 성경을 두 번씩이나 완독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질풍노도의 청년기에 접어든 나에게 의심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의 길은 신앙이 2,000여 년 전 지중해 동부 지방의 농경 사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또한 자랑스레 기록되어있는 그당시 사람들의 대량 학살 전쟁과 1940년대 앨라배마의 기독교 문명 사이에서 인지적 부조화를 경험해야 했다. [묵시록]은 고대인이 환각에 빨져 기록한 마술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한 인격적인 신은 성경적 우주론에 대한 축자주의적 해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결코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적인 격려 차원에서도 그들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통섭에 대해서는 아직도 뜨거운 논의가 한창이다. 번역을 한 최00 교수도 마찬가지지만, 하나의 학문처럼 여겨질 것인지 철학의 한 종류로 받아 들여야 할 것인지 (이들은 자유-통합 학문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아직은 정해지긴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디어가 매우 매력적인 것은, 인류의 지식이 이제 드디어, 수없이 많은 비밀의 문들을 열어제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사람들은,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섭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 그리고 생물학적 접근 방법에 대해 매우 불쾌함을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오만함이 신성한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기고있다. 적어도 나는 종교가 과학이 될 수 없고, 그 논의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과학적 현상에 대한 인간적인 해석일 뿐이다. 인간적 측면의 해석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별을 보고 별자리를 생각하며 제우스신과 그 이야기를 만들어 엮은 것은 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혀 규정하기 힘든 자연의 현상에 대해 우리 인류는 인간적 접근을 해왔다. 그래서 민속신앙이 있었고 무당이 존재했으며 귀신이 있었고, 천지신명이 있었다. 우리는 이제 그것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고,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낸다. 인간이 더이상 자연을 인간 사회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일이라고 자각해야 할 때가 왔다. 벌레를 인간의 시각에서 보거나 이해할 수 없듯이, 인간 자체도 인간의 시각이 아닌 과학적 시각으로 봐야 한다. 종종 인간의 시각과 과학의 시각을 착각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물학이 인간의 특권인것 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의 특권이다. 외계인이 가질수 도 있으며 우리 이후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우리보다 더 진보한 생명체에게서도 그러한 방법으로 접근할 것이다.
나는 과학이 만능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수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과학적인 접근은 우리가 예상하고,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설명하고, 응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지적 도구이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신의 영역에 있다고 설명하는 것은 억측이다. 과학이 아직 그러한 것을 설명할 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것이 신의 영역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객관성을 가진 지식 체계로 관찰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르고 마음을 따라가지 않고 차가운 이성을 통해 그것을 설명한다. 마음 역시 매우 정교한 도구이고 이것으로 인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경험을 통해 형성이 되며, 그것은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인간의 측면에서 바라본 삶에서 누적된 지식이 체화되고 DNA와 문화 속에 누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통섭이라는 아이디어가 모든 것을 대변하기에 훌륭한 아이디어이면서 동시에 아직 계속 발전해야 할 여지가 많은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더욱 더 진솔하게 탐구하며, 객관적으로 볼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을 위해 쓰일 것이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Posted by up4201


